물류 회사 입사 2일 차, 사장님과 면담하는 시간도 있었다. 나의 전적을 들으시고는 신기해하셨다.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왜 힘든 중소기업 물류 회사에 들어왔냐는 의미셨을거다. (나는 전직 공무원이었다.) 나이에 비해 열린 분이신 게 주량을 물어보셔서 양가가 기독교 집안이라 술을 못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바로 내가 찾던(술 값 안 드는) 인재"라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받아주셨다.
대신 안주값이 많이 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건 무한리필이라 괜찮으시다고..ㅎㅎ(역시 배우신 분 리스펙)
오늘은 전산 실무를 조금 배우고 실습했다. 실제로 어제는 뒤에서 일하는 프로세스를 들여다보는 거였다면, 오늘은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해주셨다. 덕분에 안개와 같았던 지식이 보다 선명해졌다. 물류 분야는 경험치가 일처리의 질을 좌우하는 것 같다. 기초적인 출고나 발주, 입고 등은 전산으로 처리한다하더라도
현장과 소통하고 현장을 배려해 파레트 단위를 고려하는 것, 다른 센터의 재고량을 파악하는 것, 특정 공급업체가 지연을 상습적으로 유발하기에 입고받을 수 있을 때 여유있게 받아야하는 것, 점포 재고량과 유통기간을 고려한 발주 등... 경험치가 없이는 썩 잘 해내기 어려워 보이는 과제들이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나에게 큰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 물류는 인간 지혜의 산물이라고 했던가? 물류 분야에서는 연차가 곧 실력이 된다는 점, 그리고 이 회사는 그런 연차 높은 어른들이 많다는 점, 그분들을 멘토로 삼아도 될만큼 배울 점도 많다는 점이 무척 좋다.
관료제 공직은 그렇지 않았다. 보수적인 조직에, 짤리지도 않는다. 자극이나 인센티브가 크게 없으니 매너리즘에 쉽게 빠지고, 시간만 흘러 얻어지는 연차가 그 사람의 실력이나 역량을 대변하지 못 한다. 연차가 쌓이면 대접받기를 바라지만, 그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 하기에 초임들에게 멘토나 롤모델이 되지 못 한다. 그들의 조언은 꼰대의 잔소리 정도 되기 십상이다.
존경할만한 어른의 부재는 초임의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안정이라는 가치만을 좇아 공무원이 된 자본주의 젊은이들은 현실을 알고 좌절한다.
고민과 개선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생산성과 능률... 무엇보다 보상. 그러한 것들이 이전 직장에는 없었고, 이곳에는 있다. 경험의 축적이 개인의 발전을 이처럼 보장하는 분야는 아마도 물류 밖에 없는 것 같다.(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오래 다닐 생각으로 입사한 것은 아니지만, 배울 것이 넘쳐나고 성장하는 조직을 뿌리치는 천성은 없기에 이곳과는 롱런하지 않을까 싶다.
물류 회사 입사 2일차 안개같던 지식의 퍼즐이 자리를 하나씩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