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어른이 되고 느낀 것들 - kyle의 인생트립

어릴 적에는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부모의 슬하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나의 의지대로 인생의 선택들을 해나가는 주체적인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한편으론 두려움도 있었다. 마음 편히 용돈을 받아 쓰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제한적인 자유가 내심 싫지만은 않았으니까. 모순되지만 두 가지 감정이 묘하게 뒤섞인 채 어른이 된 나는 보다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광장에서 바쁘게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아니 어디로 갈 수는 있는 걸까

막상 어른이 되고 느낀 것들

 

어른이 되면 그저 자유로울 줄 알았다. 실제로 어른이 되고 보니 오히려 자유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른이 되어 이 나라에서 누릴 권리를 얻으려면 국방의 의무로 청춘을 바쳐야 했다. 아까운 시간이었지만, 인내 후에는 달콤한 보상이 올 거라 믿으며 버텨냈다. 

 

의무의 끝자락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은 다가올 자유에 환호하기보다 닥쳐올 미래를 불안해 했다. 자유에는 책임에 따른다고 했다. 사실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울타리를 벗어나면 자유로워지기는 하겠다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을 책임진다는 것.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내 먹을 것, 내 머리를 누이고 잠들 수 있는  공간, 입을 것, 마실 것 등 나의 삶이 이어지게 하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결국 돈이다. 스스로 벌어 스스로의 삶을 연명해야 한다.

 

이 고독한 짐은 누구도 대신 져줄 수 없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어 나를 외롭게 한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와 형제 뿐이다. 그들은 나를 위해 힘겨운 노동의 대가로 번 물질조차 기꺼이 내게 써줄 것이다. 형제는 아니더라도 부모는 정으로라도 그럴 것이다. 

 

나의 돈벌이는 딱 1인분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나 생각보다 길다고 세상이 말하는 기대수명 때문에 나의 현재와 미래를 빠듯하게 살 만큼만의 급여를 받고 있다. 그마저도 내 시간과 노동력을 맞바꿔 받는 수입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거나 몸이 아파 노동이 끊기게 되면 연명할 수단이 없다.

 

나를 위해 일생을 헌신한 부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들을 책임져줄 수가 없다. 부양이나 봉양이라는 거창한 말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저 힘겨운 노동과 맞바꾼 급여의 일부로 그럴싸한 한 끼 정도를 함께 하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전부이다.

 

일주일에 5일을 일한다. 해가 뜰 때부터 시작해서 해가 질 때쯤 집에 돌아온다. 돌아오면 피곤해서 모든 것이 귀찮다. 그리고 또 출근이 다가온다. 학생 때는 방학이라도 있었지만, 어른은 방학이 없다. 실직은 방학을 부르겠지만, 마이너스 통장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부르기 때문에 섣불리 하던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다.

 

매일 매일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적 여유조차 없이 일에 찌들어 늙어간다는 느낌. 그렇게 쌓인 똑같은 하루들에 미래에 대한 투자는 없다. 주변에 보이는 화면들에는 잘나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게 다 남 이야기이고, 나의 현실은 굉장히 비루하다.

 

하루살이와 같은 나날의 끝이 어서 오기를 바라고 있노라면 왜 이 시대의 청년들이 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감정적으로 와닿는 센치한 밤도 왕왕 있다. 이 불안은 도대체 언제 종식될까? 이 삶에 익숙해져 불안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면 그건 행복한 삶일까?

 

고작 나 자신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게 어른의 삶이라면 인생은 이기심만 있으면 되는 일인가? 어린시절 배운 이타심이나 배려, 윤리의식은 개나 줘버려도 되는 것들인가? 지금이야 의지할 가족들이라도 있지만, 그들이 떠나고 난 다음이 그려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늙고 볼품 없어져 어느 누구도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하는 여생을 과연 나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에도 나는 찰나의 순간이라도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 수는 있는걸까? 나는 죽지 못해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가 떠나보낸 피터팬은 이제는 영영 돌아올 수가 없는데, 나는 아직 하염없이 그가 떠나간 쪽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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